연재한지 열한번째만에 드디어 CRISPR에 대한 리뷰를 시작한다. 1987년 오사카 대학의 연구원들은 대장균 유전자를 시퀀싱하다가 처음 보는 반복 유전자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던 연구팀은 논문 디스커션 말미에 이 시퀀스에 대해서 언급해 두었는데 이것이 CRISPR에 대한 최초 기록이 되었다. 2000년 스페인의 Mojica는 약 20여종의 세균에서 같은 패턴의 반복 유전자가 발견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SRSRs (Short Regularly Spaced Repeats)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이 유전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중요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여러 미생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닐까 예상만 할 뿐이었다. 2002년 네덜란드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가 세균 게놈내에 몰려 있으며 여러가지 규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SRSRs 대신 CRISPR(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e repeats)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였다. 이 이후 과학자들은 CRISPR와 cas 단백질이 단순히 유전자 결합 기능이 아니라 무언가 정교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단백질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2006년, 미국인 과학자들에 의해 CRISPR내 spacer 유전자들은 박테리오파지나 플라스미드에서 유래하는 것 같다는 가설이 주장되었으며, 2007년에는 이러한 가설이 정확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선행 연구 과학자들의 업적이 쌓여 규명된 CRISPR 유전자
드디어 CRISPR/Cas9 유전자 가위의 등장이다. 그런데 이 CRISPR/Cas9과 관련된 역사를 순서대로리뷰할 예정인데 독자 여러분들이 읽어보시면 의외로 CRISPR의 발견이 오래된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최초의 CRISPR/Cas9의 역사는 무려 198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ZFN의 역사는 1985년, TALEN의 역사는 2001년부터니까 가장 최근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CRISPR임에도 그 발견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오래된 편이다. 게다가 ZFN, TALEN도 그랬지만 CRISPR의 개발 역사 역시 너무나 드라마틱하고 운명적이다. 어려운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자들 덕분에 세상이 참 많이 발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1) 1987년 일본
1987년, 일본 오사카 대학의 Atsuo Nakata박사와 Yoshizumi Ishino는 대장균 유래 alkaline phosphatase의 세가지 isozyme (Isoenzyme 또는 isozyme은 기본적으로 같은 생화학적 기능을 하지만 아미노산 서열이 약간 다른 효소를 통칭하는 말이다. – 저자 주)을 연구하던 중 선행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이 세가지 isozyme이 원래부터 각각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단백질로의 합성 이후 변화 (post translational event)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였다. Atsuo Nakata박사와 Yoshizumi Ishino는 이러한 변화가 aminopeptidase 활성을 갖는 단백분해 효소의 기능 때문일 거라고 예측했는데 이러한 효소를 만드는데 필요한 iap 유전자를 대장균에서 시퀀싱을 통해 규명하는데 성공한다(Ishino, Shinagawa et al. 1987). Alkaline phosphatase는 플라스미드 클로닝을 진행할 때 phosphate monoester를 제거해서 self-ligation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데에도 유용하게 쓰이고 항체에 conjugation되어 ELISA나 Western blot을 할 때 기질액을 변색시키는 효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Nakata 박사 연구팀은 iap 유전자를 시퀀싱하고 분석을 하던 중에 그때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처음보는 220개의 반복 시퀀스를 찾아냈지만 아무리 해도 그 유전자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1987년 Journal of Bacteriology에 발표된 iap 논문을 작성하면서 디스커션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일부를 인용해 본다.
“ 대장균 유래 iap 유전자의 3’ 말단 부분에서 이상한 유전자 구조를 발견했습니다 (Figure 1 참조). 총 29개의 염기서열로 이루어진 5개의 매우 유사한 유전자 염기서열이 발견되었는데 사이에 32개의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염기서열의 사이에 있었습니다. 반복 염기서열 중 첫번째 반복 염기서열은 전사 종결 부위로 추정되는 부분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다른 반복 염기서열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대장균과 살모넬라에서는 REP (Repetitive Extragenic Palindromic Sequence)라고 해서 dyad symmetry라고 하는 염기서열이 발견되는데 이 유전자는 mRNA를 안정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14개의 유전자로 구성된 dyad symmetry가 이번에 발견된 유전자의 가운데 부분에서 발견된 것입니다(Figure 1 밑줄 친 부위 참조). 이번에 발견된 dyad symmetry는 REP 유전자와는 다른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dyad symmetry의 경우 다른 원핵생물에서 발견된 dyad symmetry와 유전자와 달랐는데 이 유전자가 생물학적으로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Ishino, Shinagawa et al. 1987)”
일본인 과학자에 의해 세균의 isozyme 연구를 진행하다가 우연히 찾아낸 CRISPR sequence
Figure 1. 일본인 과학자에 의해 세균의 isozyme 연구를 진행하다가 우연히 찾아낸 CRISPR sequence. 인류 최초의 발견이었지만 이 당시는 이 유전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참 솔직하고 정확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이 일본인 학자들은 이 유전자가 약 30년 뒤 아주 유명해진 CRISPR/cas9 이라는 유전자가위의 단서가 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여기서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dyad symmetry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Dyad symmetry란 거꾸로 읽어도 같은 시퀀스가 되는 유전자 서열을 말하는데 이러한 구조를 palindrome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Dyad symmetry
Figure 2. Dyad symmetry. 거꾸로 읽어도 같은 시퀀스가 되기 때문에 hair pin 구조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구조를 palindrome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자료 출처 : Wikipedia 백과사전)
(2) 2000년 스페인
Yoshizumi Ishino가 논문을 발표한 이후로 여러 연구자들이 유사한 유전자에 대한 보고를 했으나 아직 이 반복적인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일본인 과학자 Yoshizumi Ishino의 발표 이후 13년이 지난 서기 2000년, 스페인의 Mojica는 Molecular Microbiology라는 저널에 서신 형태로 기사를 냈다. CRISPR/Cas9 발견에서 중요한 논문이기 때문에 역시 일부를 인용한다.
“관련된 연구를 하시는 연구자 분들께.
여러 세균들과 고세균(archaea)의 유전자를 분석해보니 유전학적으로 매우 다른 생물체에서도 특별한 반복 염기 서열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들 유전자를 비교 연구해 보면 유전자의 특징, 계통 분포 등을 파악할 수 있어 이 유전자의 생물학적 관련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Figure 3 참조). …(중략)…. 반복되는 유전자의 가장 큰 특징은 반복되는 짧은 유전자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데 반복 유전자 사이에 일정한 크기의 유전자가 들어 있고 이렇게 반복되는 유전자들이 함께 몰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이러한 종류의 유전자들을 SRSRs (Short Regularly Spaced Repeats)라고 부르도록 했으면 합니다. …(중략)… SRSRs를 보면 이런 의문들이 생깁니다. 과연 SRSRs가 각 미생물에서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일까요? 또 이 유전자가 아주 오래 전 고대 미생물로부터 시작해서 진화 과정과 함께 분지가 이루어진 것일까요? 왜 이 유전자가 여러 미생물에서 발견되는지, 계통학적 특징이 있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생물학적인 기능은 무엇인지 등은 앞으로의 연구를 통해서 반드시 밝혀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SRSRs(Short Regularly Spaced Repeats)이 발견되는 미생물들과 SRSRs의 특징들 (Mojica, Díez‐Villaseñor et al. 2000)
Figure 3. SRSRs(Short Regularly Spaced Repeats)이 발견되는 미생물들과 SRSRs의 특징들 (Mojica, Díez‐Villaseñor et al. 2000). 약 20종의 미생물을 분석하였는데 반복되는 염기서열의 길이도 가장 짧은 경우에는 20bp에서 길게는 52bp까지로 달랐고 반복되는 염기서열 사이의 spacer 유전자도 저마다 길이가 다 달랐다. 1987년 Nakata 박사의 연구팀보다 다양한 미생물에서 반복되는 유전자를 찾았지만 여전히 그 역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Mojica 박사는 이 각각의 반복되는 유전자를 한꺼번에 정렬을 해보고 한가지 매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20종의 유전자를 한꺼번에 놓고 비교를 해보니 반복되는 염기서열의 크기는 제각각 모두 달랐지만 공통적인 유전자가 발견되었던 것이다(Figure 4 참조). 이 현상을 보고 Mojica 박사는 틀림없이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결국 Mojica 박사는 이 현상이 절대 우연이 아니며 무언가 필수적인, 매우 중요한 역할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Mojica 박사가 논문에 그렇게 기술해 놓았으며 이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Mojica 박사는 이 각각의 반복되는 유전자를 한꺼번에 정렬을 해보고 한가지 매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Figure 4. Mojica 박사는 이 각각의 반복되는 유전자를 한꺼번에 정렬을 해보고 한가지 매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20종의 유전자를 한꺼번에 놓고 비교를 해보니 반복되는 염기서열의 크기는 제각각 모두 달랐지만 공통적인 유전자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여러 세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예상할 뿐이었다.
(3) 2002년 네덜란드
1987년 Yoshizumi Ishino의 우연한 발견에서 보듯이 이 반복 염기서열의 존재가 아주 특별한 케이스에서 발견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유전자 시퀀싱이 대중화되고 전문화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세균의 유전자 전체를 분석하는 일이 가능해 지면서 앞에서 보았던 SRSRs가 세균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부분임이 밝혀졌다. 개인적으로 2002년에 발간된 Janssen의 논문은 참 흥미진진하고 좋은 논문이라고 생각한다. 유전자 가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2000년 Mojica에 의해서 많은 미생물에 SRSRs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 Mojica과 네덜란드 연구그룹은 이 반복되는 유전자에 대해서 학계에서 최초로 CRISPR(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e repeats)란 이름을 붙이기로 하였다(Jansen, Embden et al. 2002). 이 논문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연구성과가 몇 가지 있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CRISPR 유전자는 약 절반 정도의 세균에서만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핵세포(eukaryotes)나 바이러스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CRISPR의 존재 여부가 특정 종을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이 되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Mycobacterium의 경우 M. tuberculosis와 M. leprae는 같은 속에 속하지만 M. leprae의 경우 CRISPR가 없는 반면 M. tuberculosis는 CRISPR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약 40여종 이상의 원핵생물에 대한 분석을 진행해본 결과 한 종 내에서 발견되는 CRISPR 유전자의 반복되는 염기서열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사이즈의 경우 Salmonella typhimurium의 경우 21 bp인 반면, Streptococcus pyogenes의 경우 37bp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유전자들은 전체 게놈 중에 한 곳 이상에 산재되어 발견되었다. 한 종 내에서는 염기서열의 크기 차이도 없으면서 미생물 게놈의 여러 군데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유전자가 게놈에서 위치를 옮길 수 있는 성질을 가지지 않나 예상되었다.
셋째, 반복되는 염기서열 사이에 존재하는 비반복 염기서열(spacer)의 경우 염기서열의 크기가 거의 일정했다.
넷째, CRISPR loci를 갖는 미생물의 경우 수백 개의 염기서열로 된 공통된 leader sequence를 거의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다섯째, CRISPR locus 안에는 긴 ORF(Open Reading Frame)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섯째, CRISPR를 가진 미생물의 경우 cas1, cas2, cas3, cas4가 있었다. 여기서 cas 유전자란 CRISPER associated sequence의 약자이다. 대부분의 미생물에서 cas 유전자는 cas3-cas4-cas1-cas2 의 순서로 발견되었다. 보통 이 cas 유전자들은 CRISPR 유전자와 수백 bp 이내에서 발견되는데 가장 멀리 발견된 미생물은 M. thermoautotrophicum이라는 세균에서는 9kbp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CRISPR를 가진 미생물의 경우 cas1, cas2, cas3, cas4가 있었다
Figure 5. CRISPR를 가진 미생물의 경우 cas1, cas2, cas3, cas4가 있었다(Jansen, Embden et al. 2002). 여기서 cas 유전자란 CRISPR associated sequence의 약자이다. 대부분의 미생물에서 cas 유전자는 cas3-cas4-cas1-cas2 의 순서로 발견되었다. 보통 이 cas 유전자들은 CRISPR 유전자와 수백 bp 이내에서 발견되는데 가장 멀리 발견된 미생물은 M. thermoautotrophicum이라는 세균에서는 9kbp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Cas1 유전자의 경우 모든 미생물에서 발견되었으나 cas2, cas3, cas4의 경우 미생물에 따라 없는 경우도 있었다. Cas1 단백질은 pI 값이 9 ~ 10 정도로 매우 높은 pI 값을 갖는 단백질로 매우 염기성이어서 히스톤 단백처럼 뉴클레오타이드와 결합하는 성질을 갖지 않나 예측되었다.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이 cas1은 CRISPR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이 cas1 단백질이 CRISPR 유전자와 결합하는 것은 아닐까 예측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2000년 Mojica도 CRISPR가 단백질과 결합하는 유전자 site가 아닐까 추정했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Cas3 단백질의 아미노산을 분석해 보았을 때 helicase superfamily 2 카테고리와 유사해서 DNA 가닥을 풀어내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예상되었다. Cas4 단백질의 경우 RecB exonuclease 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대장균에서 RecB nuclease는 RecBCD complex의 일부로 recombinase 활성을 포함한 몇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까지 읽어보신 독자 여러분들은 2002년까지의 생화학/생물학자들이 CRISPR와 cas 단백질을 DNA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 대한 보수 시스템으로 생각했음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이 이후로 더 많은 cas 단백질들이 확인되었는데 단순히 DNA repair 시스템이라고 하기에는 CRISPR 유전자가 cas 단백질 유전자 부위와 너무나 한결같이 가깝게 존재하고 있어서 단순 DNA repair 기능을 뛰어넘는 어떤 기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생물학자들이 갖기 시작했다.
2002년 Jansen 논문 끝부분에 재미있는 디스커션이 나오는데 일부를 의역해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CRISPR 유전자 부위가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특히 Spacer 유전자는 CRISPR 부위에서만 발견되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 유전자가 유래한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 여러 종류의 세균을 들여다 보고 있던 네덜란드 학자들은 이 유전자가 어디서 왔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CRISPR 유전자내의 spacer 유전자는 세균이 아니라 박테리오파지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학자들은 특정 cas 단백질의 경우 DNA binding 단백질과 매우 유사한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직 정확하게 그 기전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cas 단백질이 CRISPR 생성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예측하고 있었고 아직 불완전하지만 CRISPR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었다.
(4) 2006년 미국
2006년 NCBI (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의 연구원들과 Texas 주립대학의 연구들이 공동연구를 통해 이때까지 밝혀진 23개의 cas 단백질에 대한 구조와 기능에 대한 분석을 실시한 결과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원핵세포에서의 RNAi로 추정되는 면역시스템 : 컴퓨터 분석으로 추정된 효소, 진핵세포에서의 RNAi와 기능적 유사체 그리고 예측되는 작용기전) / A putative RNA-interference-based immune system in prokaryotes: computational analysis of the predicted enzymatic machinery, functional analogies with eukaryotic RNAi, and hypothetical mechanisms of action). Reviewer의 멘트를 포함 총 26페이지에 이르는 논문이었는데 필자는 이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 주말 내내 꼬박 이틀이 걸렸다. 이 논문은 2006년 이후 약 600회 가까이 인용된 좋은 연구성과를 담은 논문이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 어려웠다. 읽는 중간에 너무 어려워서 몇 번을 집어 던지고 다시 집어 들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도 질러보고 과도한 스트레스에 탈모도 심해진 것 같았다. 26페이지나 되는 논문을 쓴 사람도 있는데 이해는 고사하고 읽기도 힘들다니… 괜히 이 연재를 시작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고 아내는 남편이 어디다 연재를 한다더니 이상해지는 것 같다며 걱정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었더니 눈이 밝아지며 전체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이해가 되는 신박한 경험.
논문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부분에 연구자들의 고민과 과학자로서의 흥미로운 가설을 기술했는데 약간의 의역을 포함해 옮겨본다.
“이번 연구에서 우리 연구자들은 cas 단백질 유전자와 관련, 지금까지 밝혀진 cas 단백질들을 분류하고 이를 기반으로 예측되는 새로운 기능들, 또 이들 유전자들간의 진화적인 관계들을 모두 분석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cas 단백질이 세균과 같은 원핵세포에서 일종의 siRNA 와 같은 면역 기능을 가지지 않나 생각하는데 그 이유로는 진핵세포에서 발견되는 siRNA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예측된 효소 기능은 진핵세포에서 유전자 silencing에 관여되는 siRNA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물론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Cas 단백질이 siRNA와 같은 기능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이번 가설은 CRISPR/Cas 시스템이 아마도 DNA repair에 관여되어 있을 것이라는 2002년도까지의 앞선 연구자들의 주장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CRISPR/Cas 시스템이 단순히 DNA repair에만 관여되어 있다고 보기에는 CRISPR 유전자가 cas 단백질 유전자 부위와 너무나 한결같이 가깝게 존재하고 있고 CRISPR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박테리오파지나 플라스미드의 유전자와 매우 유사한 유전자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필자에게 이 논문이 너무 어려웠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논문의 저자들이 아주 작은 과학적 사실도 놓치지 않고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던졌고 또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논문 곳곳에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논문의 저자인 Makarova 등은 “세균에서 발견되는 CRISPR/Cas 시스템이 진핵세포에서 볼 수 있는 RNAi (RNA interference) 시스템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지 않겠는가?”라는 가설을 수립하면서 세균을 공격하는 박테리오파지나 플라스미드에 대한 방어 기능이지 않겠는가 하고 추측했다. 예상은 소름 끼치게 그대로 적중했다. 바로 다음해인 2007년에 이르러 이 예상은 멋지게 증명되었다.
(5) 2007년 미국
2007년 Science에 놀라운 논문이 게재되었다. 필자의 세 번째 연재면서 CRISPR/Cas9의 첫 번째 연재에 실렸던 Figure를 인용했던 Rodolphe Barrangou의 논문이었다(Barrangou, Fremaux et al. 2007). 단 세 페이지 분량의 논문이었지만 이 논문을 읽으면서 “어떻게 논문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실험 디자인, 세운 가설과 검증 등등..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게 없었다. 게다가 너무 감사했던 것은 읽어보면 너무 쉽게 이해가 된다는 것. 2006년 Makarova 논문을 읽으며 피폐해졌던 정신세계가 Rodolphe Barrangou의 논문을 읽으며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CRISPR 시스템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밝혀낸 논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용으로는, 유제품 발효에 사용되는 여러 종류의 Streptococcus thermophilus와 2종의 박테리오파지(Φ858, Φ2972)의 유전자 및 표현형을 비교 분석하여 S. thermophilus 에서 박테리오파지 유래 spacer에 따라 박테리오파지에 대한 내성이 생기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과 cas9/cas7의 기능에 대한 증명을 이뤄냈다.
유제품 발효에 사용되는 여러 종류의 Streptococcus thermophilus와 2종의 박테리오파지
Figure 6. 유제품 발효에 사용되는 여러 종류의 Streptococcus thermophilus와 2종의 박테리오파지(Φ858,
Φ2972)의 유전자 및 표현형을 비교 분석하여 S. thermophilus 에서 박테리오파지 유래 spacer에 따라 박테리오파지에 대한 내성이 생기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과 cas9/cas7의 기능에 대한 증명을 이뤄냈다(Barrangou, Fremaux et al. 2007).
EPILOGUE
이번 연재에서는 1987년부터 2007년까지 초기 CRISPR 연구 성과를 소개해 드렸다. 2007년 Barrangou의 연구성과는 CRISPR가 세균의 면역시스템이라는 것을 밝힌 훌륭한 연구성과였다. 세균이 박테리오파지에 대해서 어떻게 면역을 갖게 되는지 이해하게 되면서 세균이 박테리오파지의 유전자를 정확히 인식하고 잘라내서 편집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과학자들은 이를 ‘유전자 가위’로 응용하게 되었다. 세균의 박테리오파지에 대한 면역시스템을 밝혀낸 것도 대단한 연구성과이지만 그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 추가적인 연구성과 역시 눈부신 것들이었다. 이제 다음 연재에서는 박테리오파지에 대한 면역 시스템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계속 연재).
2세대 유전자가위 : ZFN(Zinc Finger Nuclease)
2편 – Zinc Finger 단백질의 발견 / Zinc Finger가 DNA에 결합할 수 있음을 알게 되다 (2016년 3월 28일)
3편 – ZFN 개발자, 한국인 과학자 김양균 박사 / FokI이 ZFN/TALEN에서 유전자 졀개 도메인이 된 이유 / Mr. Lanphier의 Sangamo 창업 (2016년 4월 4일)
4편 – Sangamo의 사업전략과 특허 인수 / 툴젠의 설립 / Zinc Finger 컨소시엄의 탄생 / Sangamo프로젝트 SB-509의 임상실험 실패 (2016년 4월 11일)
2.5세대 유전자가위 : TALEN
5편 – 2.5세대 유전자가위 TALEN의 개발 /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오래 주목 받지 못한 TALEN TALEN의 개발 / 식물 세균에서 발견된 유전자 인식 부위 /SCIENCE지에 거의 동시에 발표된 두 개의 논문 (2016년 4월 18일)
6편 – 두 연구팀이 거의 동시에 개발한 TALEN / 식물 병원성 세균에서 찾은 TAL이라는 유전자 인지 도메인/ 때맞춰 아이오와 주립대로 옮긴 Bing Yang 교수 / 또 한 편의 TALEN 논문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다 (2016년 4월 25일)
7편 - ZFN과 TALEN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2016년 5월 2일)/ 동명이인 유전자 가위 연구자 Feng Zhang / TALEN의 라이브러리의 구축 연구 / 유전자가위 오작동 (off-target)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 TALEN (2016년 5월 2일)
8편 - 유전자 가위가 형질전환을 유도하는 기전과 GMO / 지금도 여러 가지 요인으로 끊임없이 손상되고 복구되고 있는 유전자 / 형질전환에서 유전자 가위가 하는 일 / 실제 세포에서 유전자 복구 과정 중 일어나는 일련의 작업들 (2016년 5월 9일)
9편 - TALEN의 활용 가치를 알 수 있는 놀라운 8가지 연구성과 소개 (2016년 5월 16일)
10편 – TALEN의 관련 특허 리뷰 및 미국 특허법의 변화/ TALEN 관련 주요 특허 리뷰 / 미국 특허 시스템의 변경 / 그럼 현재 TALEN 관련 특허에 관한 권한은 누가 보유하고 있을까? (2016년 5월 23일 연재)
<유전자 가위 관련 연구성과>
CRISPR/Cas9을 이용 돼지의 바이러스인 PRRSV에 감염되지 않는 돼지를 개발 (2016년 3월 14일)
참고문헌
Barrangou, R., C. Fremaux, H. Deveau, M. Richards, P. Boyaval, S. Moineau, D. A. Romero and P. Horvath (2007). "CRISPR provides acquired resistance against viruses in prokaryotes." Science 315(5819): 1709-1712.
Ishino, Y., H. Shinagawa, K. Makino, M. Amemura and A. Nakata (1987). "Nucleotide sequence of the iap gene, responsible for alkaline phosphatase isozyme conversion in Escherichia coli, and identification of the gene product." Journal of bacteriology 169(12): 5429-5433.
Jansen, R., J. Embden, W. Gaastra and L. Schouls (2002). "Identification of genes that are associated with DNA repeats in prokaryotes." Molecular microbiology 43(6): 1565-1575.
Mojica, F. J., C. Díez‐Villaseñor, E. Soria and G. Juez (2000). "Biological significance of a family of regularly spaced repeats in the genomes of Archaea, Bacteria and mitochondria." Molecular microbiology 36(1): 244-246.